별을 스치는 바람 1
제목만 봐도 이게 누구를 그린 소설인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첫 장면이 심상찮다. 우리가 아는 그 이름부터 등장하는 게 아니라 1945는 전쟁이 끝나고 전쟁 포로로 감옥에 갇힌 후쿠오카 형무소의 간수의 독백으로 시작한다. 그의 독백은, 그리고 형무소에서 인간 백정으로 불리며, 죄수, 특히 조선인 죄수들을 혹독하게 다뤘던 스기야마 도잔의 죽음으로부터
이어진다. 스기야마 도잔은 반 까막눈으로 지독한 검열관이었다. 그는
조선어로 된 모든 서적을 불살랐으며, 조그만 꼬투리라도 잡아내 편지나 서적을 금지하는 것은 물론, 그 글과 서적의 주인에 몽둥이찜질하는 이였다. 그가 살해당한 것이다. 와타나베 유이치는 그의 죽음을 조사하라는 형무소장의 명령을 받고 스기야마 도잔이란 인물을 캐내기 시작한다.
죽은 스기야마 도잔의 간수복 윗도리에서는 시를 적은 종이쪽지가 발견된다. 시의
정체가 궁금하다. 이 시는 (나의) 예상과는 달리, 스기야마를 캐낼수록 관련성이 깊어지는 한국인 청년
죄수 히라누마 도주의 것이 아니었다. 스기야마는 히라누마 도주의 나약한 시적 감성을 비아냥거리고, 그를 굴복시키려 하였지만 점점 그에게 끌려간다. 그에게 끌린다기보다
그의 시(詩)에 끌리고, 그의 감성에 끌려간다. 급기야는 반 까막눈인데도 시를 적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모국어를 잃고, 시를 잃은 청년은 오히려 힘을 잃어간다. 그
청년의 이름은 바로 윤동주.
“펜은 칼보다 강하다.”란 말을 저주스럽게 생각해왔다. 정말로 펜이 칼보다 강하다면 그런 말이 왜 필요하겠냐며, 펜보다
센 칼의 시대를 저주했다. 그러나 정말로 그렇게 믿어버린다면 내가 들고 있는 펜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어 그래도 간직하고 싶어했다. 그런 마음을 저주하기도 했다.
《별을 스치는 바람》 1권은 그 짐승 같은 시절, 글을
써야만 했던 한 식민지 조선의 청년과 글을 전혀 모르던 한 일본인 청년 사이의 대결이자 교류를 보여준다. 그
대결과 교류는 글, 문자, 시를 둘러싼 것이다. 그 힘에 관한 것이다. 비록 지금은 부질 없고, 가장 필요 없고, 저주받아야 할 것이지만, 전쟁이 끝나면 그것에 매달려야만 할 것 같은 것.
스기야마 도잔이란 인물이 있었을까, 윤동주는 감옥에서 저렇게 지냈을까
하는 의문은 가질 필요가 없다. 애당초 소설이니까. 픽션이라고
진실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준익 감독의 영화 <동주>의 감동과는 다른 감동을 이 픽션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분명하다. 아직 2권이 남았다.
스기야마가, 이정명이 옮긴 시 중 한 구절을 나도 옮기며 소리 내어
읽어본다.
바람이 부는데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다.
내 괴로움에는 이유가 없을까,
단 한 여자를 사랑한 일도 없다.
시대를 슬퍼한 일도 없다.
- <바람이 불어> 中
뿌리 깊은 나무 바람의 화원 으로 한국형 팩션의 새로운 장을 열었던 작가 이정명이 이번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전쟁과 문학을 이야기한다. 일본 후쿠오카 수용소의 살인사건을 파헤치는 미스터리한 구성 속에 잔인한 전쟁도 결코 죽이지 못한 아름다운 문장과 가슴 뭉클한 휴머니티를 특유의 감성적인 필체로 그려냈다.
작가는 후쿠오카 형무소를 배경으로 순결한 청년 윤동주와 그의 시를 불태운 냉혹한 검열관 스기야마 도잔의 문장을 통한 대결을 그리는 동시에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비인간적이고도 잔혹한 행태를 고발한다. 20년 전 우연히 일본 도지샤대학 교정에서 윤동주 시인의 초라한 시비를 본 작가는 ‘청년 시인 윤동주의 생애 마지막 1년, 차가운 감옥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나?’ 라는 의문을 품고 오랜 세월 동안 자료조사와 수정작업을 거쳤다.
숨은그림찾기처럼 본문 곳곳에 감추어진 「서시」, 「별 헤는 밤」, 「자화상」, 「참회록」 등 주옥같은 윤동주의 시와 그가 사랑한 프랜시스 잠,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문장 속 비밀들이 사건을 푸는 단서가 된다. 슈베르트의 「겨울 나그네」, 베르디의 오페라 「나부코」 중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 등도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모티브가 된다.
적에서 동지로, 잔혹한 전쟁 속에 책과 문장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유대, 책을 불태우는 검열관과 문장으로 그에게 맞서는 순결한 시인의 대결, 잔인한 생체실험으로 기억을 잃어 가면서도 시와 문장과 음악을 사랑했던 청년의 삶, 참혹한 형무소 안에서 벌어지는 아름다운 합창의 향연, 그리고 꼬리를 무는 살인의 미궁 속에 펼쳐지는 장대한 휴먼드라마가 감동과 재미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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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군 최고사령부 법무국 검찰과의 미 공군 조종사 실종 사건 조사
프롤로그┃사라진 것들은 반딧불처럼 떠돈다
1부
방랑자로 왔으니 다시 방랑자로 떠나네
가슴에 맺혔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들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
심문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소년은 어떻게 군인이 되는가
음모
죽음의 재구성
한 대의 피아노와 그 적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문장은 어떻게 영혼을 구원하는가
고통이여! 너는 사랑하는 여인보다 다정하다
바람이 어디로부터 불어와 어디로 불려 가는 것일까
가자 가자 쫓기우는 사람처럼 가자
별 헤는 밤